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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생방송 세계는 지금’을 주목하는 이유

과거글/TV에세이

by 곰도리 2009. 10. 2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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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아적인 운명’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주목도 받지 못했지만 프로그램 탄생 또한 그리 기대하지 않았던 프로그램. 주로 특정 프로그램 폐지를 두고 논란이 불거졌을 때 이 ‘불우한 운명’의 프로그램은 탄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폐지되는 프로그램은 주목하는 반면 뒤를 이어 새롭게 탄생하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죠.

지난해 연말 KBS〈생방송 시사투나잇〉이 폐지되고 〈시사360〉이 탄생할 때 그랬습니다. 사람들은 <시사투나잇> 폐지에는 주목했지만 <시사360>의 탄생을 기대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시사360>은 어느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 프로그램이 됐습니다. <시사360> 제작진 가운데 다수가 첫 방송 전까지 <시사투나잇> 폐지 반대시위에 동참하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은 당시 그렇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사생아적인 운명의 KBS ‘생방송 세계는 지금’

지난 얘기를 다시 끄집어 낸 이유가 있습니다. 최근 KBS 가을개편에서 바로 이 ‘사생아적인 운명’의 프로그램이 또 다시 탄생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생방송 세계는 지금>이라는 프로그램인데, 이 프로그램의 전신은 다름 아닌 <시사360>입니다. <생방송 세계는 지금>이 탄생하는 과정은 지난해 <생방송 시사투나잇>이 폐지되고 <시사360>이 탄생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 KBS 2TV‘생방송 세계는 지금’
프로그램 폐지에 따른 반발과 논란이 있었고, KBS 내외부의 반발도 극심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시사360>은 폐지됐고 후속 프로그램이 편성됐습니다. 후속 프로그램이 편성된 이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는 것도 지난해 상황과 비슷합니다. ‘사생아적인 운명’의 프로그램 뒤를 이은 ‘사생아적인 운명’의 프로그램 탄생이라 … <생방송 세계는 지금>이 참 얄궂은 운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자리에서 ‘얄궂은 운명’에 대해 얘기하려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전 <생방송 세계는 지금>이라는 프로그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방송된 프로그램 내용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생방송 세계는 지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제작진입니다. 국제 이슈를 다루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해외 PD특파원들을 활용하고 있는데, 주 활약상을 펼치는 PD들이 <생방송 시사투나잇> ‘출신’ 제작진들입니다. 물론 프로그램 초기인 만큼 아직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고, 미진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병순 KBS 사장의 ‘주도’ 하에 진행된 가을개편이란 점 때문에 새로 태어난 프로그램에 일단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생각을 잠시 거둬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생방송 세계는 지금> 제작진은 그렇게 ‘만만한’ 제작진이 아닙니다.

‘생방송 세계는 지금’ 일단 주목해 보자

사실 국제적인 이슈를 매일 다룬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국내 유력 언론사 특파원들이 세계 곳곳에 나가 있지만, 대부분 미국과 유럽 국가 위주의 굵직한 소식들로 뉴스를 생산합니다. 거기에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소식이 가끔씩 채워지죠. 나머지 국가들은 전쟁이 발발하거나 대형 지진․해일이 발생해야 주목하는 정도입니다. 우리의 국제뉴스는 지나치게 ‘세계 주류적인 흐름’에만 초점이 맞춰 있습니다.

자체 발굴기사나 고유 시각이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당장 신문 국제면을 한번 살펴보세요. 외신을 인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특파원들이 자체 생산한 기사라 해도 발굴 기사는 드문 경우에 속합니다. 이건 방송뉴스도 예외가 아닙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현실의 한계도 감안해야 하지만 그렇다 해도 한국 언론의 국제뉴스 문제점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우리 언론의 국제뉴스는 ‘주류적이면서 지나치게 협소한 세계’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MBC <W>와 같은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W>는 국내 언론의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PD들이 직접 세계 곳곳을 누비며 취재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세계 주류’에 국한되지 않고 ‘제3세계’와 아프리카 등 그동안 국내 언론이 거의 다루지 않았던 국가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안들을 생생한 취재를 통해 보여줬습니다. <W>의 이 같은 노력으로 국내 언론의 국제뉴스가 다양해지고 풍부해진 건 인정해야 합니다.

‘생방송 세계는 지금’의 존재 이유 - 국제 뉴스의 다양화

하지만 냉정히 말해 <W>는 예외적인 경우에 속합니다. 물론 KBS도 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국제 프로그램을 만든 적이 있지만 제대로 꽃을 피우기도 전에 폐지가 됐습니다. 아쉬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 때문에라도 <생방송 세계는 지금>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기존 신문과 방송에서 전하는 국제뉴스의 획일성에 답답해하시는 분들이라면 MBC <W>와 함께 더더욱 이 프로그램을 주목해야 합니다.

지난 19일부터 KBS 2TV에서 방송된 <생방송 세계는 지금>에서 제가 가장 주목한 건 21일 방송된 ‘오키타양의 수업료 투쟁’이란 리포트였습니다. 저는 경제대국 일본에서 교육비 문제가 이 정도로 심각한 줄은 미처 생각을 못했습니다. 방송사 메인뉴스는 물론이고 주요 언론들이 이 내용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죠.

   
▲ KBS 2TV‘생방송 세계는 지금’
‘오키타양의 수업료 투쟁’에는 경제대국 일본에서 돈이 없어서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아이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수업료가 없어서, 기본적인 생활비가 없어서 고등학교 3명 중 1명이 아르바이트 생활전선으로 내몰리고 있는 일본 현실을 TV에서 직접 접하니 ‘88만원 세대’의 고된 현실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생방송 세계는 지금>을 보면서 왜 방송사 메인뉴스와 신문 국제면에선 이런 내용이 보도가 되지 않을까 -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날 <생방송 세계는 지금>은 일본의 일부 학생들이 학비를 면제해 달라며 도쿄 시부야에서 수도권 고교생 시위행진을 벌인 소식을 전했습니다. 경제대국 일본에서 고등학생들이 수업료를 면제해 달라며 거리시위에 나서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는데, 왜 국내 언론은 이를 주목하지 않을까요. 전 고개가 꺄우뚱해지더군요.

‘세계는 지금’ 제작진은 학생들의 빈곤이 가속화되기 시작한 것이 지난 10년간 일본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증가한 것과 맞닿아 있다고 지적을 하더군요. 2009년 9월 현재 일본의 비정규직은 1685만 명이라고 합니다. 3명중 1명이 비정규직인 셈인데요,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격차도 해마다 벌어져서 지금은 3배나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사회 저변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뉴스 생산해 주길

비정규직 수입이 가계지출을 훨씬 초과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학업을 포기하거나 공장으로 가거나. 둘 중 하나 아닐까요. 이런 일이 일본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자민당 독재 체제의 일본이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된 이유를 지금까지 여러 언론이 분석하고 짚었지만, 체감적으로 뚜렷이 와 닿지는 않더군요. 하지만 이날 <생방송 세계는 지금>이 전한 이 리포트를 보면서 독주체제를 걸었던 자민당 정권이 왜 일본 시민들의 외면을 받았는지 뚜렷이 알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사회안전망이 어느 정도로 무너져 가고 있는 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일본 사회만의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빈부의 양극화와 비정규직 증가는 지금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양극화가 심화될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충분히 교훈을 삼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국제뉴스를 좀 더 다양하게 접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생방송 세계는 지금>에 ‘비판적 지지’와 격려를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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