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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권 탓 그만하고 언론 스스로를 돌아보라

과거글/시사IN

by 곰도리 2009. 4. 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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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시사IN 82호(2009.4.11)에 기고한 글입니다.

지난 3월 초 여야는 미디어법안과 관련해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100일간 여론 수렴 후 표결처리”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합의에 대한 반응과 평가는 엇갈렸다. 당시 총파업을 이끌었던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향후 100일 동안 모든 방송·신문사들이 매일 현 정부의 실정을 폭로하고, 언론법의 문제점을 지적해 6월 국회 상정을 엄두조차 못 내게 해달라”고 역설했다. 이른바 ‘보도투쟁 100일’의 시작이었다.

한 달여가 지난 지금, ‘보도투쟁 100일’ 성적표는 어떨까. 초라하다. 속된 말로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다. 미디어법안 관련보도만 문제가 아니다. 신영철 대법관 파문, 장자연 리스트, 청와대-방통위 성 접대 등 한국 사회를 뒤흔들만한 대형 사건들이 이 기간 동안 연이어 터졌다. 언론인 체포와 같은, ‘21세기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도 일어났다.

하지만 언론은 무관심했다. 상대적으로 많은 언론이 관심을 보였던 장자연 리스트는 연예저널리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YTN 노종면 위원장 구속과 MBC 〈PD수첩〉 이춘근 PD 체포 등은 최소한의 ‘의무방어전’에 머물렀다. 언론자유를 위한 언론인들의 연대? 그들은 철저한 방관자였다.

언론의 관심은 ‘다른 쪽’에 집중됐다. 주요 현안을 뒤로 미루면서 올인한 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그리고 김연아였다. 여기엔 지상파 방송3사가 앞장섰다. WBC 결승전이 열린 3월 24일, 방송3사는 메인뉴스의 절반을 WBC로 채웠다. 이날 SBS는 23건, MBC는 22건, KBS는 15건의 보도를 쏟아냈다. 김연아 선수가 세계피겨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3월 29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송3사는 김연아 선수와 관련해 이날 모두 15건의 보도를 쏟아내며 스포츠 뉴스의 위상(?)을 드높였다.

WBC나 김연아 선수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그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WBC․김연아 보도를 메인 뉴스의 절반 이상으로 도배하는 게 온당한 지는 의문이다. 그 ‘도배질’에 언론인 체포와 구속이 뒤로 밀리거나 가려졌다면 더욱 그렇다.

YTN 노종면 위원장과 MBC 〈PD수첩〉 이춘근 PD가 체포․구속되고 풀려나는 과정에서 많은 언론인들이 ‘MB정부의 비이성적 언론탄압’을 질타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그들의 비판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끝났고 보도와 프로그램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사석에서의 정부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인이 그래선 안된다.

언론노조 총파업 때도 마찬가지. 파업에 참가한 언론인들은 한 목소리로 ‘이명박 정권 언론탄압 중단’을 외쳤다. 하지만 업무에 복귀한 이후 동료 기자와 PD가 부당한 탄압을 받을 때 언론인들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냉정히 말해 그들은 이중적이었다.

많은 언론인들이 MB정권의 언론탄압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동의한다. MB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노골적이고 천박한 수준으로 언론장악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언론 상황이 MB정권만의 문제인가. 동의하기 어렵다. 각종 사회 현안들을 밀어내고 국민적 관심이라는 미명 하에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 동참한 건 정권이 아니라 언론 자신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련의 과정에서 내부 견제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MBC의 경우 최근 신임 보도국장 정책설명회에서 ‘과도한 WBC 보도’가 지적됐지만, 그 뿐이었다. 김연아 관련 보도에서 비슷한 보도행태는 계속됐다. 최근 언론보도에 대해 이재국 <경향신문> 미디어팀장은 “마치 과거 군사정권 시절 ‘3S’가 2009년판으로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동의한다. 우려되는 건 그것이 타의가 아니라 자발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언론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MB정권의 언론탄압이 아니라 언론 스스로의 천박한 상업화와 저널리즘 실종이다.

<사진=김연아 선수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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