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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관변화’ 교양의 ‘홍보화’ 그 다음은?

과거글/시사IN

by 곰도리 2010. 4. 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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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134호에 실린 글입니다.

KBS <열림음악회>가 또 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12월13일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 출연 논란을 시작으로 벌써 세 번째다. 지난 1월 원전수출 특집으로 ‘정권 홍보방송’ 논란의 정점에 서더니 최근엔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를 개최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이번 논란을 어떻게 봐야 할까. 많은 이들이 KBS가 정권홍보에 이어 이젠 재벌홍보까지 나섰다며 강도 높게 비판한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보더라도 이런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지난 3월 27일 부산 신세계센텀시티에서 개최된 <열린음악회>의 초대권을 보자. 부산광역시 주최, 신세계 후원이라고 분명히 적혀 있다. ‘호암 이병철 회장 100주년 기념’이라는 문구도 포함됐다. 음악회를 협찬한 신세계 이명희 회장은 고 이병철 회장의 딸이다. 이번 음악회 협찬 비용만 2억 9천700만 원 정도이다. 이쯤 되면 어렵지 않게 구도가 읽힌다. 고 이병철 회장이 중심에 있고, 양 옆으로 <열린음악회>와 신세계가 지지대를 형성한 꼴이다. KBS가 삼성 홍보방송에 동원됐다는 비난이 타당성을 갖는 이유다.

KBS는 “이번 음악회의 기획의도는 이병철 회장과 무관하다”며 관련 내용을 부인하고 있다. △본방송에는 이병철 회장과 관련된 내용이 전혀 들어가지 않을 것이고 △음악회를 협찬한 신세계 쪽에서 초대권을 발행하면서 이 회장 탄생 기념 문구를 집어넣었다는 게 KBS의 설명이다.

KBS의 설명대로라면 속된 말로 신세계가 공영방송의 뒤통수를 쳤다는 말이 된다. 뒤통수 맞은 KBS가 어떤 대응을 할까. 만약 협찬 기업이 신세계가 아니라 중소기업이나 사회단체였다면? 그들이 사전 논의 없이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했다면 KBS가 가만히 있을까?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향후 KBS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다.

방송에서 신세계나 이병철씨 관련 내용이 언급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KBS의 해명은 심각하다. 이는 참석자들과 인터넷 등을 통해 <열린음악회> 녹화 내용이 알려진 상황이고, 그 때문에 KBS가 비난을 받아도 편집을 통해 본방송에서 걸러내면 괜찮다는 말과 같다. 대체 KBS가 생각하는 리얼리티는 어떤 것일까. 현장의 리얼리티를 ‘왜곡하는’ 수준의 편집이 갖는 의미가 어떤 것일까. KBS 해명을 보면서 지난 2008년 연말에 있었던 제야의 타종방송 왜곡 논란이 떠올랐다.

사실 이번 논란을 바라보는 필자의 우려는 다른 데 있다. 난 이번 논란이 TV브라운관에서 ‘공공적 문화지대’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방송에서 나타나고 있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뉴스·시사영역의 ‘관변화’, 예능·교양의 ‘시사화’이다. MBC <무한도전>과 KBS <개그콘서트>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현실비판과 풍자가 가끔씩 등장한 반면 방송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엔 이 같은 현실 풍자와 비판이 없다. 사람들이 뉴스와 시사를 외면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방송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의 ‘관변화’를 피해(?) 교양과 예능 영역으로 옮겨왔다. 그런데 이곳에서마저 정치권과 재계의 그림자를 봐야만 하는 현실 - 난 그 정점에 공영방송 KBS가 있고, 대중음악 프로그램의 상징인 <열린음악회>가 있다고 본다.

사실 시사프로그램도 아닌 ‘음악 프로그램’이 정치권과 경제계를 두루 넘나들며 논란의 핵으로 등장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KBS <열린음악회>는 그 경계를 무너뜨렸다. 일반 교양프로그램도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 못지 않게 얼마든지 정치적으로 변용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오래 동안 방송에 한이 맺힌 탓일까. 그동안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인사들은 뉴스·시사 프로그램을 넘어 교양과 예능으로까지 ‘침범 영역’을 확대해왔다. ‘김제동 하차’ ‘빵꾸똥꾸’ 논란이 그냥 발생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젠 정치만이 아니라 삼성으로 상징되는 재벌마저 교양에 조금씩 발을 내딛고 있다. 이제 정·관·재계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TV 문화지대’는 없는 것인가. KBS <열린음악회> 논란은 그런 우려가 얼마든지 현실화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사진설명> 지난달 27일 부산 신세계센텀시티에서 녹화한 <열린음악회>의 홍보물과 초대권. 후원에 신세계가 명시돼있고 '호암 이병철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이라는 문구도 적혀있다. ⓒKBS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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