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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과 김연아 그리고 고려대

과거글/TV에세이

by 곰도리 2009. 4. 20.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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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세이] 한국에서의 학벌과 연고주의
 
지금 박지성이 고려대에 진학하려 한다면? 가정이긴 하지만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오히려 고려대에서 박지성을 ‘모셔오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의 김연아 선수처럼. 하지만 10년 전 박지성은 고려대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 고려대는 물론이고 다른 대학들과 국내프로팀들이 박지성을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지성이 실력이 없었던 걸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지난 19일 방송된 MBC 〈스페셜〉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연출 김현기)에서 박지성의 ‘예전 감독들’은 그의 영리한 플레이와 탁월한 전술능력 등 축구선수로서 그가 가지고 있는 기질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당시 박지성을 주목한 국내 지도자는 거의 없었다.

   

 
▲ 지난 19일 방송된 MBC 〈스페셜〉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연출 김현기)

박지성의 ‘실력’과 한국의 ‘학벌-연고주의’

박지성은 당시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난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만큼의 선수가 (나는) 아니구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박지성은 ‘겸손’의 의미로 그렇게 얘길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실력과 우리 사회에서 인정하는 실력이란 의미가 서로 달랐기 때문에 그런 괴리가 발생한 게 아니었을까. 그것은 박지성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이학종 수원공고 감독의 말에서도 알 수 있다.

“만약 한국 사람이 감독이 됐다면 지성이 같은 선수는 발굴이 안됐을 수도 있어요. 인맥이라든가. 우리는 그런 게 있잖아요. 선후배 관계도 있고.”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에서 박지성의 모습을 보며 히딩크를 떠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박지성은 올림픽대표팀 부터 월드컵대표팀 발탁에 이르기까지 항상 ‘탈락대상 1순위’로 거론돼 왔다. 기억하는가. 월드컵대표팀 최종 선발 3개월 전부터 언론은 수시로 박지성을 탈락 1순위로 거론했고, 발표 며칠 전에는 이를 아예 ‘기정사실화’ 하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만약 히딩크 감독님이 아닌 다른 감독님이었다면 저는 월드컵을 뛸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는 박지성 선수의 발언은 당시의 사회분위기가 대략 어떠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자기반성 없는 한국 언론 … 제2의 박지성을 ‘죽일’ 수도 있다

 

   
▲ 지난 19일 방송된 MBC 〈스페셜〉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연출 김현기)

사실 히딩크가 축구를 통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축구 이상의 것이었다. 당시 한국 축구계에 널리 퍼져 있던 연고와 인맥 학벌주의 - 히딩크는 월드컵 대표팀 선발을 통해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했고 그 통렬한 비판의 핵심에 박지성이 있었다. 박지성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 역시 축구 이상이었다.

물론 지난 2002년 이후 우리 사회가 이 메시지를 얼마나 의미 있게 현실화 시켰는지는 의문이다. 한국 축구계에 널리 퍼져 있던 연고와 인맥 학벌주의는 사라졌을까. 단정은 피해야겠지만 ‘그렇다’라는 답을 하기엔 미온적인 부분이 많다. 특히 당시 박지성을 ‘탈락 1순위’로 지목했던 언론은 아무런 자기반성 없이 지금도 한국 축구에 대한 논평에 바쁘다. 하지만 이들은 유소년 축구나 ‘제2의 박지성’을 발굴하는 데는 인색하다. 그들은 축구가 아니라 ‘스타’를 원했던 게 아닐까. 지금의 김연아 선수처럼 말이다.

솔직히 언론만 탓할 일은 아니다. 스타에 대한 쏠림 현상은 우리 사회의 익숙한 풍경이다. 그건 나를 비롯한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도 ‘스타에 대한 쏠림 현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다. 언론이 한국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에 소홀한 건 비판받아야 하지만 그것의 모든 책임을 언론에 떠미는 건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는 지난 2002년 히딩크가 우리 사회에 던졌던 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을 때 서형욱 축구 해설위원은 당시 국내 축구계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국내 언론에서조차도 박지성 선수가 히딩크에게 발탁되기 전까지 크게 인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로선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충격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의 한국 축구계가 과거에 비해 얼마나 달라졌는가 하는 점이다.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는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은 당신 자신과 우리 사회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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