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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 ‘무한도전’

과거글/TV에세이

by 곰도리 2010. 1. 2.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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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
[TV에세이] MBC ‘무한도전’이 던진 메시지를 생각하다

1월2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은 사실상 2009년 마지막 방송이었다. 한 해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장치들이 여기저기 배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일 년 간 고생한 출연진을 위한 제작진의 작은 배려(팬 미팅?)도 그렇고, ‘의좋은 형제’를 통해 꼬리잡기나 헐뜯는 것이 아닌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보여주려 한 것도 이런 장치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이날 〈무한도전〉의 ‘여러 장치’는 브라운관 안이 아니라 밖을 향해 있었다고 본다. 특히 자신들이 직접 농사지은 ‘뭥미쌀’을 출연진 가운데 고마운 사람에게 전하는 모습을 보여준 ‘의좋은 형제’가 의도한 바는 분명했다.

“지금 TV를 보며 웃고 계시는 여러분. 잠시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2009년 한 해를 보내며 고마운 사람들에게 ‘고마움 마음’을 표현했나요.” 〈무한도전〉은 그렇게 나에게 묻고 있었다. TV를 보는 내내 속이 뜨끔했던 이유다.

사실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은 출연진들이 각 자 ‘뭥미쌀’을 전달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면서 극에 달했다. 2일 방송에선 유재석 씨 관련 부분만 나왔지만, 만약 내가 저런 상황이라면, 나에게, 내 집 앞에 쌀을 갖다 놓고 갈 동료나 선배나 후배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유재석 씨 집 앞에 놓인 쌀통에 쌀이 한 가마니도 없는 것을 보고 그냥 웃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 1월2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
그런 점에서 새해 첫 〈무한도전〉은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만들었다. 한 해를 마감하며 주변의 고마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했던 데다, 과연 나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 이 물음 앞에 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무한도전〉을 단순한 예능이 아니라 ‘인문학적인 예능 방송’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데〈무한도전〉은 역시 〈무한도전〉이었다.  〈무한도전〉이 이날 방송으로만 끝냈다면 그냥 한 해를 잘 성찰·마무리하고, 새해에는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살라는 정도의 ‘덕담’을 했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2일 방송이 끝난 뒤 보여준 다음 주(1월9일) 예고방송은 왜 〈무한도전〉이 ‘무한도전’일 수밖에 없는가를 보여줬다.

기대했던(?) ‘뭥미쌀’을 받지 못한 출연진들이 서로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며(?) 복수전에 나선다는 내용인데, 사실 이런 측면들이 인간이 가진 본성에 더 가깝지 않을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게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를 더 살릴 수 있다고 봤다. 〈무한도전〉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우리 내부에는 ‘상황’이나 ‘심리’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일 뿐 악함과 선함이 같이 공존하고 있다. 〈무한도전〉이 1월2일 방송에선 스스로를 성찰하도록 만들면서 9일 방송에선 인간 본연의 이기적 심리를 ‘까발리는 전법’을 쓴 이유가 뭘까. 인간의 상반된 두 가지 측면을 순차적으로 보여주겠다는 게 아닐까. 〈무한도전〉은 내게 그렇게 묻고 있다.

‘그게 인간이고 우리네 인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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