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세이] 내가 사극을 더 주목하는 이유
2010년 안방극장 드라마의 큰 흐름은 사극과 전쟁이 될 것 같습니다. 방송사마다 굵직한 대작들이 예고돼 있기 때문입니다. KBS <추노>(연출 곽정환, 극본 천성일), MBC <동이>(연출 이병훈, 극본 김이영) SBS <제중원>(연출 홍창욱, 극본 이기원)을 비롯해 <명가>(KBS) <만덕>(KBS) 등의 사극이 시청자들을 찾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사극이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전쟁 대작입니다. KBS와 MBC가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전쟁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선보일 예정인데 규모나 배우 캐스팅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KBS는 1970년대 방송됐던 <전우>를 2010년 버전으로 새롭게 탄생시킬 예정이고, MBC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60년 만에 이루어진 사랑과 우정을 그린 <로드 넘버원>(연출 이장수 김진민, 극본 한지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로드 넘버원>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제작진이 참가하는 데다, 소지섭·김하늘·최민수 등이 주연배우로 출연할 예정이어서 벌써부터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KBS ‘추노’ MBC ‘동이’ SBS ‘제중원’을 주목하는 이유
하지만 저는 전쟁대작보다 사극을 더 주목하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주목하고 싶습니다. 2010년에 선보일 사극이 왕실사극·전쟁사극에서 벗어나 민초들에 주목하려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KBS <추노>는 노비와 그 노비를 쫓는 추노 그리고 양반사회를 혁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려는 민초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추노>의 주인공이 왕이나 귀족, 소수의 영웅들이 아니라 평범한 민초들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연출을 맡은 곽정환 PD는 이미 <한성별곡-正>을 통해 사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죠. 미니시리즈 최초로 레드원 카메라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영상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입니다.
▲ KBS 특별기획드라마 ‘추노(推奴)’ 장혁,오지호,이다해(위부터) ⓒKBS |
아직 구체적인 방영 일정은 잡히지 않았지만 MBC <동이>도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우선 <대장금> <이산> <허준>의 이병훈 PD가 연출을 맡았다는 자체만으로도 방송계에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숙빈 최 씨를 주인공으로 택한 것도 흥미를 끄는 부분입니다.
사실 숙종의 후궁이면서 영조의 어머니였던 숙빈 최 씨는 그동안 사극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입니다. 장희빈과 인현왕후라는 인물에 가려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숙빈 최 씨는 천민 출신의 후궁으로 나중에 임금의 자식을 셋이나 낳은 ‘연구대상’의 인물입니다. 천민의 자식이 나중에 임금이 된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 임금이 조선에서 가장 훌륭한 임금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은 영조라는 점도 흥미를 더합니다. 이병훈 PD가 숙빈 최 씨를 어떤 모습으로 그려낼 지 주목됩니다.
기대와 우려 교차되는 대작 전쟁드라마
사극과 함께 2010년에 선보일 전쟁 드라마는 기대도 되지만 한편으론 우려도 됩니다. KBS <전우>는 회당 3억 원의 제작비가 드는 대작이고, MBC <로드 넘버원> 또한 회당 5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될 예정입니다. 전쟁 드라마 자체가 일단 스케일이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우려가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KBS 드라마 <전우> ⓒKBS |
물론 드라마 방영 전이라 단정하기는 이릅니다. 하지만 영화판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저의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영화계는 전쟁물 제작움직임이 한창입니다. 연평해전을 다룬 <아름다운 우리>(가제, 곽경택 감독)와 <연평해전>(백운학 감독)이 대표적이고,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 이야기를 다룬 <포화 속으로>(이재한 감독), 고 신상옥 감독의 영화를 리메이크 한 <빨간마후라2>도 준비 중입니다. 이외에도 몇 편의 전쟁영화가 관객을 만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군 당국의 협조 없이는 제작이 어려운 영화들입니다. <연평해전>의 경우 제작발표회 때 조갑제 씨가 나와 연설까지 했다고 하는데, 이쯤 되면 고경태 <씨네21> 편집장의 말대로 “그냥 제작발표회가 아니라 ‘제작발표회 및 호국결의대회’”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우파 시민단체인 방송개혁시민연대의 후원을 받고 있는 점 역시 <연평해전>에 대한 우려를 더해 주고 있습니다.
2010년 안방극장에서 방송될 전쟁 드라마들은 어떨까요. 일단 물음표로 남겨두기로 하지요. 하지만 KBS에서 방송될 <전우>가 1970년대 대표적인 반공 드라마였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옵니다. “휴머니즘을 살리는 쪽으로 제작해서 KBS 브랜드 드라마로 키워 시즌제 형식으로 매년 새로 선보일 계획”이라는 게 KBS의 설명인데, 솔직히 기대 반 우려 반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2010년에 선보일 드라마 중에서 전쟁대작보다 사극을 더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저의 이런 기대를 전쟁 드라마 제작진이 빗나가게 했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고 있습니다. 가능할까요? 역시 물음표로 남겨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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